2025-09-23 오전 10:33:00
현실과 동떨어진 ‘팰릿 출하 의무화’
입력 : 2025-09-23 16:47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가락·강서시장에서 팰릿 출하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시 조례를 개정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농가와 유통인들은 시장 내 물류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농산물 출하 여건을 고려하지 않는 일률적인 법제화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시 조례에 ‘팰릿 출하 조치’ 조항 박겠다는 공사=공사는 최근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제2차 가락시장 시장관리운영위원회를 열어 시 조례 개정안 추진 현황을 공개했다. 핵심은 ‘서울특별시 농수산물도매시장’ 조례 제52조에 ‘팰릿 출하 조치’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앞서 임춘대 서울시의회 의원은 8월11일 해당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사는 시설현대화사업의 진행 상황 등에 따라 팰릿 출하 촉진을 위해 법인·중도매인·시장도매인을 대상으로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그간 공사는 개별 품목을 일일이 팰릿 출하 의무화 품목으로 지정해왔다. 이달 기준 가락시장 내 팰릿 출하 의무화 품목은 무·배추·양파·양배추·대파·옥수수 등 14개다. 전체 취급 품목(192개)의 7.3%다.
공사 관계자는 “이 방식으론 가락시장 현대화사업이 마무리되는 향후 6년 내 전 품목 팰릿화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면서 “조례를 통해 팰릿 출하를 의무화한다면 정책 시행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산지에서도 미리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하 초반·끝물 농가 물류비 부담 증가…시장 내 재선별 작업도 비효율적=유통인과 산지 관계자들은 이러한 기대가 실현되는 것은 국내 농업 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팰릿 출하는 시장 내에서 재선별 없이 바로 경매할 수 있는 ‘완전 규격 출하’를 의미한다.
경북 성주의 참외농가 A씨는 “출하 초반·끝물 같이 출하량이 많지 않을 때는 농가 1곳이 팰릿 1개를 채우기가 버거워 팰릿 1개당 여러 농가의 출하품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팰릿 1개에 10㎏들이 참외 상자 60개가 적재되는데, 출하량 감소로 30개만 보내도 팰릿 사용료는 동일하게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매장에서의 혼선도 예상할 수 있는 문제다. 한 팰릿에 여러 농가들의 출하품이 혼재돼 있다면 경매장에서 출하자·품종·등급별로 일일이 내렸다가 다시 적재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 관계자 B씨는 “예를 들어 복숭아는 공사 유통정보에 등록된 품종만 수십가지인데 산지에서 이를 팰릿에 가득 쌓아 시장에 보내면 경매장에선 이를 풀어 다시 선별해 쌓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시장 인근 환적장 만들어라?…거꾸로 가는 물류 효율=공사가 제시한 대안에 대해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공사는 도매법인이 자체적으로 시장 인근에 팰릿 환적장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올 4월 강서시장에서 시행한 수박 전면 팰릿 출하는 이에 대한 허구성을 여실히 증명해보인 사례라는 게 유통인들의 지적이다.
올여름 자체 선별장을 운영한 시장도매인 C씨는 “선별장 운영을 위해 임대료·인건비·물류비·운송비가 추가로 들면서 이전보다 비용은 2배 이상, 유통시간은 4∼5배 늘어났다”고 털어놨다.
품목별 특수성을 고려한 섬세한 정책 추진과 운송차량 지원 등 실질적인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배경이다. 시장 관계자 D씨는 “품목별 특수성을 고려해 정책을 유연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했고, E씨는 “기사가 윙바디 차량 등 팰릿 출하에 적합한 차량으로 바꿔 순회수집 등으로 물류 효율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