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계욱 기자
- 승인 2025.06.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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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만도 하루해가 짧은데 파렛트 출하로 수박농가 ‘골병’
파렛트 출하 부담 이탈 현상 가속, 생산기반 붕괴 현실화
출하방식 변경, 도매시장에 담 쌓고 농가 출하 거부한 셈
출하 과정·비용 늘어난 반면 농가 수취가격 더 떨어져

“농산물도매시장은 농업인(출하주)들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까? 언제부터인가 도매시장 편의주의로 일방적인 규칙을 만들어 산지에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산지야 죽던 말던 도매시장만 활기를 띄면 되는 건가요?”
일찌감치 초고령화에 진입한 농업·농촌이 일손부족 등 갖가지 사유로‘곡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가운데 농산물도매시장은 일방적으로 출하방식을 변경해 농업인들에게 추가적인 고통을 전가해 논란이 거세다.
농업인들이 마음껏 이용해야 할 도매시장이 높은 벽을 쌓고 농업인들의 이용을 강제로 제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이다. 요즘이 출하 제철인 수박은 산지에서 파렛트 출하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해 수확만도 버거운 현실에서 파렛트 출하는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 산지의 공통된 목소리이다.

수박 파렛트 출하 명분이 약하다
수박의 파렛트 출하방식 변경의 시발점은 가락시장이다. 지난 2014년 시범사업을 시작해 2016년 5월부터 가락시장에 전면적으로 수박 파렛트 출하 의무화가 적용됐다. 다만 가락시장의 경우 적정물량을 이미 초과한 수박이 반입되고 있어 타 품목 경매까지 지장을 준다는 지적에 따라 그 대안으로 수박 파렛트 출하 의무화가 추진된 것이다.
가락시장 이외 구리도매시장에서 2021년 시범사업 이후 2022년부터 전면 시행된데 이어 최근에는 강서도매시장에서도 도입됐다. 이들 도매시장의 수박 출하방식 변경은 ‘물류 효율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 어디에도 농업인(출하주)을 위함이라는 대목은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가락시장이나 구리시장과 달리 다양한 유통 주체들이 공존하는 강서시장에서는 그간 벌크(바라)출하에서 파렛트 출하로 변경한 것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파렛트 출하 방식 변경은‘안된다’는 시장 종사자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강서지사는 강행했다.
강서지사는 강서시장에서 거래되는 수박의 평균 단가가 가락·구리 시장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파렛트 의무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강서시장으로 출하되는 대부분의 수박은 영세한 농가들이 주류를 이뤄 파렛트 출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농가들은 경매가가 낮더라도 강서시장으로 출하를 선호해 왔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단순히 거래가격을 올려보겠다는 이유로 그간 농가들의 출하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출하 방식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은 명분도 실리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파렛트 출하로 인한 비용 누가 부담하나
농가들은 ‘물류 효율화’를 명분으로 추진된 수박 파렛트 의무화는 시대적 흐름이라 치더라도 이로 인한 출하비용 상승은 누가 책임지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간 산물(바라)로 출하하던 수박은 산지에서 출하 작업을 한 뒤 도매시장으로 출하, 도매시장에서 선별·하역 등의 과정을 거쳐 거래해 왔다. 그러나 파렛트 출하의 경우 산지에서 몇 단계의 과정이 추가된다. 도매시장 출하에 앞서 수확, 선별, 상차 등을 직접 하거나 별도의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 등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농가들이 파렛트 출하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비용 상승에 따른 농가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규칙을 만들어놓고 이 비용이 일방적으로 농가들에게만 전가되는 것이 옳은 처사이냐는 강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수박 재배 농가들은 파렛트 출하로 수박 1통당 2천원 내외로 비용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기존 5톤 차량 1대당 바라 작업은 수박 1,500개 내외를 출하할 수 있는 반면 파렛트 출하는 800개 내외를 50% 가량 줄어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파렛트로 출하할 경우 추가적으로 차량이 1대 이상 더 필요하고 최소 비용으로 따져도 100만원 이상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다 기존 바라 상태로 출하해 강서시장 인근 선별장에서 파렛트 작업을 의뢰할 경우 대당 80만원 가량 소요되고 산지에서 인부를 사서 파렛트 출하작업을 할 경우 대당 68만원의 비용이 추가된다.
전북 고창 성내스테비아수박영농조합 송민선 회장은 “차량 1대 기준으로 최소 100만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드는 반면 파렛트 출하 지원 비용은 1대당 8만4,000원(파렛트당 6,000원, 14개 파렛트 적재 시) 등에 불과해 출하비용 증가를 오롯이 농가에서 부담하고 있다” 면서 “파렛트 출하로 인해 산지에서 부담하는 비용은 크게 늘어났음에도 수박 가격은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출하방식 일방적 변경, 농가 이탈 가속화
산지에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수박 파렛트 의무화가 도매시장에 쉽게 정착한 것은 거래가 간소화해진데다 추가적으로 발생된 비용을 전적으로 산지에서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중도매인 입장에서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거래량이 집중되고 있는 수도권 도매시장의 중도매인들은 최근 들어 파렛트 출하 수박 외에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대놓고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도매시장 출하방식으로 인해 산지에서 거센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출하방식 변경에 부담을 느낀 농가들의 이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다 도매시장 출하 비중이 현저히 떨어지고 포전거래 물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창 성내스테비아수박영농조합은 한때 90여명에 육박하던 조합원이 49명에 불과하고 고창 참살이수박작목반도 55명의 작목반원에서 고작 20명만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크게 위축되고 있다.
고창 흥덕농협 김낙철 성내지점장은 “출하방식 변경 전에는 도매시장 출하 비중이 70% 정도였는데 최근 포전거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는 실정” 이라며 “과도한 노동력이 요구되는 수박 농사에서 추가적인 노동력을 요구하는 출하방식 변경은 고령 농업인들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이탈현상 가속화로 결국 생산기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 꼬집었다.
송민선 회장은 “도매시장 요구대로 파렛트 출하로 하역 인력이 감축되고 유통환경이 빨라졌다면 누군가는 수혜를 입는 비용이 발생했을 것인데 이 비용이 왜 산지에는 전달되지 않는지 따져 묻고 싶다” 면서 “농업인들이 자연스럽게 출하해야 할 도매시장이 높은 담을 쌓아놓고 출하를 막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이런 도매시장의 미래가 장담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고 말했다.
한 유통전문가는 “산지와 도매시장은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산지는 뒤처지고 도매시장만 앞서나가는 형국이 지속되고 있어 심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면서 “물류효율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가락시장이 한다고 나도 하겠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벗어나 중·소규모 농가들의 출하선택권을 보호하고 차별화된 상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일방적인 출하방식 변경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