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태·이두현 기자
- 승인 2025.05.20 20:01
- 호수 4169
- 8면
2025-05-20 오후 1:43:00출처 : 농수축산신문 (이한태, 이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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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축산신문=이한태·이두현 기자]

농산물 유통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물류, 조직, 인적 혁신과 더불어 농산물 유통과 관련해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산지에서의 변화가 필수다.
농산물 유통 혁신이 단순히 산지의 수취가격을 높이고 낮은 수준에서 소비지 가격을 안정화하는데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 산지 교섭력 강화로 유통 효율성 제고
산지를 조직화할 경우 농산물 품질 상향 평준화와 더불어 산지의 교섭력 강화, 농산물 유통과 물류 효율성 제고, 수급 안정 등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생산자조직의 역할 제고와 농산물 유통정책 개선 방안’ 연구보고에 따르면 조직화된 산지는 공동 생산·선별·출하·계산 등을 실현해 집단적 유통·물류 시스템을 구축, 유통 단계 축소에 이바지하며 효율성을 높인다. 이 과정에서 유통·물류 비용이 절감되며 품질·신선도는 향상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영세한 농가의 개별출하 방식은 소규모의 농산물을 비체계적으로 선별·포장·운송하다 보니 물류비용이 높고 일정한 품질의 상품을 대량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는 반면 조직화·전문화된 산지는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일관된 품질의 다양한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대형유통업체나 도매시장, 중간상인 등과의 거래 과정에서 개별 농가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해 원하는 바를 강하게 관철할 수 있다. 특히 조직화된 산지일수록 정보의 비대칭성이 줄어 보다 유리한 교섭이 가능해질 수 있다.
산지가 조직화·규모화될수록 최근 기후 위기 등과 더불어 관심이 높아진 농산물의 안정적 생산·공급, 가격급락 대응 등 수급에도 대응이 용이해진다. 조직화된 산지는 저장·방출, 산지 폐기, 생산량 조절 등을 개별 농가 단위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으며 계약재배나 정가·수의매매 등에도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30여 년 조직화 추진했지만 성과는 답보
과거 농정 당국은 1990년대부터 농산물 유통의 효율성 제고와 수급 안정, 농가 소득 증대와 교섭력 강화 등을 위해 산지 조직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여러 정부를 거치며 산지 조직화의 일환으로 △산지유통센터 등 유통시설 확충 △품목별 전문조직 육성 △자조금제도 도입 △공동마케팅조직과 브랜드조직 육성 등이 추진됐다.
2012년부터는 농산물 통합마케팅조직 개념이 도입돼 산지 조직화의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았다. 통합마케팅조직은 공동 선별·출하·계산 등 집단적 유통체계를 통해 품질 균일화, 거래교섭력 강화, 유통 효율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같은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 도매법인 관계자에 따르면 가락시장에 출하되는 물량 중 70% 이상은 연간 거래금액이 1000만 원 이하인 영세 소농이 출하하는 물량이다.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산지의 조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농협이 기존 작목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9년부터 육성하기 시작한 공동선별출하회 조직 역시 정체된 분위기다. 농협에 따르면 2019년 1759개에 달하던 공선출하회(1259개)·공동출하회(500개)는 1700개 전후에서 증감을 반복하며 2023년 1751개(1130개·621개)로 오히려 감소했다. 회원수 역시 같은 기간 7만5675명에서 7만1197명으로 줄었다.
이에 대해 농협은 농촌의 인구감소와 고령화 심화를 주된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농촌의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산지의 조직화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 산지조직 역량·조합원 참여 핵심
산지가 조직화되고 유통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지역농협과 조합공동사업의 전문성과 마케팅 역량 강화, 농업인 조합원의 적극적인 참여 등이 선행돼야 하는 것으로 지목된다.
농협은 공선출하회·공동출하회 육성과 더불어 지역농협 간 연합마케팅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개별 출하되던 지역농협의 판로를 연합마케팅사업을 통해 단일화·규모화함으로써 시장교섭력을 강화하고 판매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2023년 말 기준 농협은 시군연합조직 66개, 품목·광역연합조직 14개 등 80개 연합마케팅사업 조직을 운영 중이며 시군연합사업단의 도 단위 통합과 원예조합공동사업법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2023년 원예부문 연합마케팅사업 실적은 2019년 3조119억 원보다 1조1870억 원 증가한 4조1989억 원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조합과 조공법인 등 산지 조직화의 주체와 참여의 핵심이 되는 농업인 조합원의 참여 문제는 산지 조직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은 최근 열린 신유통토론회에서 ‘산지유통발전과 전문인력 양성 전략’ 주제발표를 통해 산지 유통의 문제점으로 규격화·표준화 미흡에 따른 품질관리체계 미구축, 채소류 공동출하 체계 미구축, 영세브랜드 난립, 소비지 환경변화 대응 미흡 등을 꼽았다.
김 원장은 “지역·품목농협은 전문성 부족과 조합원의 낮은 참여율, 조합원 고령화 등이, 조공법인은 참여조합과의 경합, 임직원의 마케팅 역량 부족, 운영자금 부족 등이, 농업법인은 부족한 전문인력, 재무 불안전성과 조직적인 지원·육성 체계 미흡, 영세성 등이 산지 유통의 한계”라며 “소비지 지향적 마케팅 역량을 강화하고 산지 조직의 광역 단위 통합마케팅 체계 전환, 엄격한 품질관리체계 구축, 조합원에 대한 서비스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온라인도매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도 산지 조직화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장민기 농정연구센터 소장은 한국식품유통학회 2023년 하계학술대회 심포지엄에서 ‘디지털혁신(DX) 시대, 농산물 산지유통의 과제’ 주제발표를 통해 디지털 혁신으로 농업분야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으며 특히 산지에서는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도·소매 단계에서의 변화에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소장은 “도·소매 단계에서 디지털 주도력을 가질 경우 현재보다 더욱 강하게 산지가 종속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빠르게 확산되는 경제·사회 시스템의 디지털화에 대응하면서 산지에서부터 농식품 디지털혁신의 지향을 제시해야만 주도적·주체적 위상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지에서 조직화의 성패는 핵심 주체로 꼽히는 농협의 역할과 농업인의 적극적인 참여에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농협이 판매농협으로서의 역량을 강화하고 조합원 역시 조합 이용률을 높임으로써 산지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농협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농협 조합원의 판매사업 이용률은 26%로 30%가 채 되지 않는다. 특히 40세 미만 조합원의 판매사업 이용률은 8.5%에 불과한 실정인 만큼 조합원 참여는 산지 정책의 핵심 과제다.
채성훈 농협중앙회 미래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농협의 관점에서 산지조직화는 협동조합의 가장 기본이 되는 목표인 공동행동을 통해 기존 농산물 출하방식의 실패를 줄이고 완화하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농협은 생산자인 농업인의 수취가격 제고와 소비자의 소득 안정 등 수요와 공급에 기반한 유통과정 상 왜곡된 가격을 받거나 지불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위한 산지조직화의 최고 과제는 사람”이라며 “농협은 유능한 마케터이자 영농지도자로서의 역량, 농가에 있어서는 농협에 대한 신뢰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