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두현 기자
- 승인 2024.05.21 18:21
- 호수 4117
- 5면
2024-05-21 오후 7:45:00출처 : 농수축산신문 (이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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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축산신문=이두현 기자]

매년 잊을 만하면 농산물 가격이 폭락·폭등했다는 기사와 함께 장바구니 물가, 밥상 물가를 우려하는 여론이 조성된다. 농산물 수급과 관련해 학계에서 여러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정부 역시 다양한 대책을 내놓음에도 매년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그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임을 방증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식품 물가 이슈, 진단과 과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농축수산물이 전체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가중치는 감소하는 추세로 2022년에는 7.49%에 불과했다. 가공식품이 7.5%, 외식이 13.8%임을 감안하면 실제 먹거리 물가에서 농축수산물 원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농축수산물을 자주 구입하고 가격 정보 수준도 높아 농축수산물 가격 변화를 더 크게 체감한다고 밝혔다.
농산물 가격이 상승하면 국민 대다수인 일반 소비자가 물가 불안에 시달리고 반대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 고질적인 생산비 상승에 시달리는 농가가 피해를 호소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해 적정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수급 조절이 필수적이다.
이에 농산물 수급 문제의 원인과 정부의 대책, 농산물 거래의 개선방안 등을 살펴본다.
# 농산물 수요·공급의 비탄력성
농산물 수급 문제는 우선 농산물 수요와 공급이 비탄력적임에 기인한다.
농산물은 사람의 생존에 필수 요소인 의식주 중 ‘식’의 큰 축을 담당한다. 농산물은 필수재인 만큼 기본적으로 소비하는 양이 있어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그 상승분만큼 구매를 줄이지 않는다. 반대로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도 굳이 필요량 이상으로 수요가 증가하지 않는다.
이는 공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농산물은 최소한의 재배기간이 필요한 만큼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바로 공급량을 늘리기 어렵고 가격이 내려가도 이미 생산된 상품은 울며 겨자 먹기로 팔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공급이 평소 수요를 조금만 넘겨도 쉽게 가격이 폭락하고 조금만 모자라도 폭등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특히 이런 특징은 상대적으로 재배기간이 짧은 시설채소, 과채류보다는 재배기간이 길고 특정 기간에 생산되는 배추·무·양파·마늘 같은 노지채소와 과수류의 경우에 더 심하게 나타난다.
더불어 몇몇 품목은 매년 시세에 따른 작물 전환이 활발히 일어나 품목별 재배면적이 과도하게 넓어지거나 좁아지면서 생산량이 일정치 않은 것도 농산물 수급 문제를 유발한다.
이외에도 최근 농업을 둘러싼 여러 여건은 농산물 수급의 불확실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박창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후변화가 진행됨에 따라 연평균기온이 상승하고 극한기후로 인한 각종 기상재해가 잦아질 것”이라며 “대부분의 기후 연구자는 현재 진행되는 기후변화의 수준이 여러 기후변화 시나리오 중 가장 심각한 상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우박·냉해·폭염·폭우 등으로 과수농가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사과·배·복숭아 등 주요 과실류의 생산량이 급감해 지난해 추석부터 올해 초까지 과일 가격이 급등했고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또한 국내 인구 감소와 핵가족화 등으로 농산물 소비 구조가 바뀌고 농촌 고령화와 지방 소멸 등 불안정한 농업 생산에 관한 문제도 예기된다.
가속화되는 농업 개방 역시 농산물 수급에 위협이 될 수 있다. 2018년 발효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2022년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같은해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보다 더 적극적이고 개방 압력이 가중되는 외국과의 협정이 체결될수록 국내 농업의 불안정성은 심해질 것으로 국내 생산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 안정적인 농산물 생산량 유지 위한 정책 필요
정부 역시 농산물 수급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2022년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식량주권 확보와 농가 경영안정 강화’를 설정, 농산물 수급 안정에 관한 내용을 포함했다. 이와 관련 생산자들은 실효성 있는 수급 정책 마련을 위해 다양한 주문을 하고 있다.
이태문 마늘의무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은 “매년 자조금위원회에서 진행하는 경작신고는 55%가량, 재배면적 조사는 65% 정도 이뤄지며 정착되는 과정에 있다”며 “이와 함께 정책적으로도 돌려심기, 재파종 등 농산물 공급을 조정할 방안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생산자를 유인할 수 있는 당근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자조금 제도 개선을 통해 자율적인 산지 수급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인의식을 갖고 스스로 사업을 추진하고 결정하도록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산지조직화가 선행돼야 농업인들 스스로 생산·공급을 조정하고 안정적인 농산물 수급을 이룰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권승구 동국대 교수는 “농산물의 특성상 공산품과 같은 완전한 계획 생산은 어려울지라도 산지조직화가 이뤄진다면 적정생산량 유지가 훨씬 용이해질 것이고 설령 생산량이 과도하게 많거나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출하량 조정을 통해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예약형 정가·수의매매를 위해서도 산지조직화가 선결과제인 만큼 정부는 일본 등 해외의 선진 사례를 참고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을 펴야 함에도 여전히 개별적인 수급 문제가 발생하면 할당관세(TRQ) 등 단기적인 대책으로 수습하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용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 회장은 “지난해 각종 기상재해로 사과 등 과수 작물에 큰 피해가 발생해 문제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지난 15~16일에는 강우를 동반한 때아닌 한파와 강원도에선 대설주의보까지 발령되는 등 기후변화는 현실이 됐다”며 “농산물이 안정적으로 생산되도록 재배면적 관리와 더불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품종·기술 개발과 시설 확충 등에 정부가 예산을 책정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함에도 일부 정부 기관은 농산물 수입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정부도 할당관세를 농산물 수급의 방편으로 소개하는 등 근원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 예측할 수 있는 거래로 물량 과잉·부족 방지해야
농산물 거래 과정에서도 안정적인 수급이 이뤄지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국내 농산물 거래에서 도매시장을 경유하는 비중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도매시장에 출하되고 있다. 도매시장에 출하된 상품은 대부분 경매를 통해 거래된다. 경매제는 실시간으로 공급 물량과 수요량을 반영해 가격을 형성하고 기준가격을 제시한다. 다만 비탄력적인 농산물 수요·공급이 적용돼 가격 등락 폭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경매제의 단점을 극복해 안정적인 농산물 가격과 수급 조절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정가·수의매매다.
최병옥 농경연 연구위원은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는 수급 안정이 농산물 도매시장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며 “국내 공영도매시장도 경매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계약재배 물량을 늘리고 정가·수의매매를 통해 사전에 필요한 물량을 미리 준비하고 정해진 가격으로 거래해 안정적인 농산물 유통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 역시 농산물 도매가격의 변동성 완화를 위해 2022년 기준 19%에 불과한 정가·수의매매 비중을 2027년까지 25%로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이렇게 사전 관리되는 농산물의 생산 정보와 소비지의 수요 정보를 연결해 안정적인 거래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도 제시된다.
농경연은 ‘2024 10대 농정 이슈’를 통해 산지의 재배면적을 유지·관리하는 빅데이터 기반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개별 생산자의 재배면적 △작황 △출하 시기별 품질 △산지유통센터의 선별·저장 정보 등을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에 공유할 것을 주문했다. 이와 함께 소비지 유통업체도 필요한 물량과 품질 등을 사전에 공유하면 온라인도매시장을 통해 원활한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더불어 정부는 농산물 도매시장에 전자송품장을 도입해 출하자가 사전에 당일 출하 물량을 파악하고 자율적으로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