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두현 기자
- 승인 2024.04.26 06:00
- 호수 4113
- 5면
2024-04-26 오전 9:42:00출처 : 농수축산신문 (이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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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축산신문=이두현 기자]

과거 위탁상들이 농산물 유통을 주도하던 시절에는 불공정거래와 대금결제 지연 등으로 출하 농업인의 피해가 속출했었다. 이에 정부는 농산물 공영도매시장을 개설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경쟁적인 방식으로 가격을 결정하는 경매제를 도입했다. 공영도매시장에서 농산물 수집과 경매를 맡은 것이 도매법인이다.
지난 40여 년간 공영도매시장은 농산물 유통의 중심이었다. 도매법인 역시 꾸준히 성장해 이제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의 도매법인들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가락시장의 중앙청과는 지난해 9741억 원가량의 농산물을 거래해 올해 도매법인 최초로 1조 원 거래 달성의 기대감을 올리고 있다.
농업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하고 농산물 유통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도매법인이지만 지금은 일부 농업인 단체에서 ‘카르텔’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 농산물 물가상승이 도마위에 오르면서 여론 역시 도매법인과 경매제를 농산물 수급과 가격 불안정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산물 수급 안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지금 도매법인의 역할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점검했다.
# 농산물 가격 발견과 판로 보장
공영도매시장에서 도매법인은 경매제를 통해 공급과 수요에 따른 거래 가격을 정하고 산지 농업인들의 안정적인 판로가 된다.
도매법인은 농업인의 농산물을 매입해서 중간이윤을 붙여 파는 것이 아니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락가의 최대 7%를 수수료로 받는다. 따라서 최대한 높은 가격에 농산물을 팔고자 노력하고 이는 농업인의 수취가 제고로 이어진다. 반대로 경매에서 농산물을 낙찰받아 이윤을 붙여 소비지에 판매해야 하는 중도매인은 최대한 낮은 가격에 구매하려고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공급과 수요에 따른 가격이 결정된다.
오세복 한국농수산물도매시장법인협회 전무는 “도매법인은 공정하고 투명한 경매 과정을 통해 출하 농산물의 수준과 소비지의 수요가 실질적으로 반영된 농산물의 가격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큰 존재 의의”라며 “특히 가락시장의 거래 결과는 전국 농산물 유통의 기준 가격으로 작용하고 거래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 역시 농산물 유통의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된다”고 밝혔다.
더불어 기본적으로 도매법인은 농안법에 따라 출하자의 농산물 수탁을 거부할 수 없고 전량 판매하므로 농업인의 판로를 보장해준다. 또한 출하 대금을 즉시 정산해주는 만큼 농업인의 재정 안정에도 이바지한다.
이외에도 도매법인은 중도매인과 약정을 맺고 미수·신용거래를 진행하고 있어 중도매인의 유통 활동을 촉진하는 한편 일정 부분의 위험성을 대신 부담하고 있다.
# 지나친 현금배당과 투기 대상으로의 전락
한편에선 공익적 성격을 띠고 있는 도매법인이 농산물 거래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업과 산지 발전을 위해 힘쓰기보다는 모기업의 투자처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가락시장 도매법인의 매출액과 영업이익·당기순이익은 각각 서울청과 331억 원·81억 원·84억 원, 중앙청과 347억 원·80억 원·69억 원, 동화청과 392억 원·76억 원·67억 원, 한국청과 349억 원·69억 원·68억 원, 대아청과 231억 원·51억 원·33억 원을 기록했다.
이들 도매법인의 영업이익률은 19~24%에 달한다. 통계청의 ‘2022년 서비스업조사 결과’의 매출액 규모별 현황에 따르면 ‘도매 및 상품 중개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9%다. 단순 비교로도 도매법인의 영업이익률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도매법인이 공영도매시장에서 독점적 권리를 누리며 높은 이익을 거두고 있는 만큼 농업과 산지 발전을 위해 환원·투자하고 있는지다. 일부에서는 도매법인이 모기업의 캐시카우(자금원)로 전락해 대기업과 사모펀드의 투기판이 벌어졌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서울청과·동화청과·한국청과는 각각 40억~50억 원을 모기업에 배당했다. 특히 중앙청과의 경우 지난해 정기배당 41억 원, 중간배당 100억 원을 지급해 당기순이익 대비 배당금을 나타내는 배당성향이 205%에 달했다. 유일하게 대아청과는 호반그룹이 인수하기 전부터 수년째 현금배당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업과 관계없는 기업과 사모펀드 등이 수년간 도매법인을 인수하고 거래 과정에서 매매차익을 거두고 있다.
이에 지난해 11월 진행된 서울시의회의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행정사무감사에서 임춘대 시의원은 “도매법인이 공익의 기치 아래 배타적 특혜를 오랫동안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익은 농업과 관련 없는 대주주 현금 고배당으로 이어졌다”며 “수익의 사회적 환원을 통해 국내 농산물 유통 활성화에 힘써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산지 개발, 정가·수의매매 확대 등 공익적 기능 강화 필요
이에 전문가들은 도매법인의 존재 의의가 원활한 농산물 유통으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있는 만큼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먼저 도매법인의 역할이 수집에 방점이 찍혀있는 만큼 농산물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도록 산지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 요구된다. 산지에 대한 교육·생산기반 구축·계약재배 등을 추진하고 정가·수의매매를 적극적으로 늘려 산지 농가의 수입을 보장하면서도 농산물의 안정적 수급이 가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도매법인이 수십 년간 산지에서 출하하는 농산물을 위탁받아 이익을 쌓아오는 과정에서 농산물의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을 위해 산지 공급망관리(SCM)에 얼마나 투자했는지는 의문”이라며 “더 늦기 전에 산지를 개척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계약재배를 통한 예약거래로 농산물의 안정적인 수급 관리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도매법인이 농산물 수급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가·수의매매 확대지만 현재 이뤄지는 정가·수의매매는 당일 반입 물량을 해결하는 수준이기에 실효성이 없다”며 “도매법인에서 경매사를 확충하고 산지에 파견해 시기별로 분할 계약하고 생산량에 따라 가격과 폐기 여부 등을 산지와 논의해 결정하는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 나아가 도매법인이 적극적으로 정부의 수급 조절에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원장은 “경매제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는 가격 등락이 너무 심하다는 점”이라며 “도매법인도 정부의 수급 정책에 동참해 기금을 조성하고 비축을 돕거나 도매시장 내부에서 만이라도 물량을 조정할 방안을 강구해 가격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도매법인이 지나치게 이익에만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농업인 단체와의 적극적인 연계를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강정현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공영도매시장에서 영업하는 도매법인은 공공성이 담보돼야 하는 만큼 농업계와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의무적으로 생산자단체 대표 등을 사외이사로 임명하거나 생산자단체와 협의체를 구성해 농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기업 운영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당근과 채찍으로 도매법인 변화 유도해야
다만 도매법인의 운신의 폭이 농안법에 따라 정해지고 제한된 만큼 도매법인의 역할 확대를 위해서는 적절하게 규제를 완화하고 경쟁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선 정가·수의매매 확대를 위해서는 도매법인에 대한 유인책과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위태석 농촌진흥청 과장은 “일본의 경우 1970년대부터 소비지에서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공급받기 위해 정가·수의매매에 대한 수요가 발생했고 점차 경매제를 밀어내 주류 거래 방식으로 정착했다”며 “도매법인의 제삼자 판매를 제한적으로 풀어주면 정해진 기간 단위로 일정 물량의 공급을 요구하는 소비지와 도매법인이 연결되고 도매법인이 정가·수의매매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도매법인이 사기업의 특성상 공익적 역할보다는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만큼 경쟁 촉진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된다.
송정환 ㈜농제연 대표는 “도매법인의 원래 역할은 산지의 대리인(에이전시)이지만 최근 법인들은 스스로를 산지와 소비지의 중개자(브로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산지에 대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공영도매시장의 농협공판장이 도매법인과는 차별화된 농협 본연의 역할을 다하며 도매법인과 경쟁해야 하다”고 밝혔다.
김윤두 건국대 교수는 “농안법상 도매법인 재지정에 대한 내용이 부실해 지자체의 조례에 따라 정해지고 웬만해선 기존 도매법인이 유지되고 있다”며 “재지정 요건을 명확히 해 신규 도매법인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도매법인이 더욱 산지에 신경 쓰고 출하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